강북삼성병원과 은행의 만남, 노년의 기부에서 싹트는 仁의 마음

병원과 은행이 손잡은 까닭은 단지 돈 때문이 아니다
2026년 7월 20일 오늘, KB국민은행이 강북삼성병원과 ‘시니어 건강 증진·기부 문화 확산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지난 16일 신현철 병원장과 이윤석 WM추진본부 상무 등 양측 관계자가 모인 자리에서 이루어진 이번 협약의 골자는 단순합니다. 시니어 고객에게 자산관리와 건강관리를 아우르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넘어 유산 기부 등 기부 문화를 체계적으로 확산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언뜻 보면 사회공헌을 곁들인 비즈니스 제휴로 읽힙니다. 금융기관은 자산관리 노하우를, 의료기관은 건강관리 인프라를 공급하는 상호 윈윈 전략으로 보이기 십상이지요. 그런데 이 뉴스를 읽는 동안 뭔가 좀 더 깊은 곳을 건드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돈과 건강, 그리고 죽음과 그 이후의 유산이라는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가 이 협약 한 장에 촘촘히 직조되어 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정리’에 담긴 어른의 공부
이번 협약이 주목하는 것은 분명 시니어 세대의 자산과 건강입니다. 하지만 그 종착점이 단지 노후의 안정이 아니라, 사회를 향한 나눔 곧 ‘기부’로 이어진다는 점이 이채롭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나이 듦에 대한 현대 사회의 한 가지 중요한 변화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과거의 노년이 ‘물러남’과 ‘휴식’에 방점이 찍혔다면, 이제는 ‘어떻게 의미 있게 마무리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의료 현장에서 만나는 많은 어르신들은 자신의 건강이 무너졌을 때 비로소 삶의 유한함을 절감합니다. 그 순간 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를 돌아봅니다. 하나는 남은 시간 동안 나의 몸과 마음을 어떻게 건사할 것인가이고, 다른 하나는 나의 흔적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입니다. 후자는 흔히 유산 상속이라는 가족 안의 문제로 국한되곤 했지만, 이제는 사회적 기여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나의 평생 노동의 결과물인 재산이 병원의 연구비로, 어려운 환자를 위한 기금으로 흘러가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이지요.
필자 생각엔, 이러한 변화의 밑바탕에는 오래된 동양적 가치가 은은하게 깔려 있다고 봅니다. 바로 ‘나’라는 개인이 완성되는 방식은 단지 개인의 성취에 있지 않고, 내가 속한 공동체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있다는 믿음입니다. KB국민은행과 강북삼성병원의 제휴는 이런 심리적 토양을 기반으로, 막연한 선의를 ‘자산관리’라는 합리적 시스템으로 끌어안으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대학이 일깨우는 재물의 어짊
仁者以財發身,不仁者以身發財 — 「大學 傳10章」
인자이재발신, 불인자이신발재
“어진 사람은 재물을 써서 자신을 드높이고, 어질지 못한 사람은 자기 몸을 던져 재물을 불리려 한다.”
여기서 ‘發身(발신)’은 자신의 인격과 삶의 가치를 꽃피운다는 뜻입니다. 『대학』은 재물을 다루는 이 대목에서 재물 그 자체를 악마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재물은 쓰기에 달렸다고 말합니다. ‘어진 사람’의 손에 들어간 재물은 자신의 사회적 존재를 더욱 아름답게 빛내는 도구가 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자기 삶의 모든 시간과 건강을 깎아서라도 재물이라는 도구를 숭배한다는 것이지요.
이 문장이 탄생한 맥락은 ‘덕을 근본으로 삼고 재물을 말단으로 삼는다(德本財末)’는 『대학』 특유의 철학입니다. 나라를 다스리거나 한 집안을 이끄는 이가 재물을 보는 눈이 삐뚤어지면 모든 질서가 무너진다는 경계의 말입니다.
헌데 이 2천5백 년 전의 경구가 오늘날 시니어의 유산 기부와 만나니 의미가 새롭습니다. 노년에 이르러 평생 모은 자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행위는 그야말로 ‘이재발신(以財發身)’, 즉 재물을 써서 자신의 인생을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행위에 다름 아닙니다. 반대로 마지막 순간까지 돈에 집착하여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는 것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재물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것, 곧 ‘이신발재(以身發財)’의 현대적 모습일 것입니다.
나눔, 인생의 마지막을 수놓는 한 땀
대학에서 말하는 仁(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책임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께 조금 더 와닿게 말씀드리자면, 시니어 기부라는 것은 거창한 박애주의 선언이 아니라 내가 오랫동안 함께 살아낸 이 세상에 대해 마지막으로 지는 아름다운 책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학생이 수업 시간에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교수님, 죽기 전에 재산을 다 쓰고 가겠다는 것과, 남겨서 사회에 쓰이게 하는 것 중 무엇이 더 가치 있나요?” 저는 이렇게 답을 대신한 적이 있습니다. “자, 편의점에서 저녁을 산다고 생각해 봐요. 계산대 앞에서 내 지갑 속 돈이 그날 저녁의 나를 채우는 데에만 쓰일지, 아니면 그 일부가 계산대 옆의 기부 통에 한 푼 떨어져 누군가의 내일을 채울지. 그 결이 쌓여서 나라는 사람의 마지막 그림이 완성되는 거란다.”
기부를 ‘베푼다’는 약간의 우월감이 섞인 용어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완성해 가는 마지막 퍼즐 조각으로 여기는 태도 말입니다. 강북삼성병원이 KB국민은행과 손잡고 시니어의 자산을 기부로 연결하는 과정을 ‘맞춤형’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겁니다. 누군가의 인생 마지막 장을 얼마나 조심스럽고도 섬세하게 받들어야 하는지를 알기 때문이지요.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가 되는 삶
나이 든다는 것은 생물학적 쇠퇴가 아니라 존재의 깊이를 더하는 과정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귀 기울인 이 작은 사회적 움직임이,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당신은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재물을 모았는가”라고 묻는 조용한 질문이 아닐는지요. 그 질문의 답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우리는 조금 더 仁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나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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