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DDP가 꿈꾸는 신약의 시대… 노자와 장자가 묻는 기술의 한계

동아쏘시오그룹이 AI 신약개발 플랫폼 'AIDDP' 가동을 발표했다. 이 지능형 '통발'이 던지는 효율의 약속 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장자와 노자의 지혜를 성찰한다.

약(藥)을 찾는 마음, 그 오랜 여정

2026년 7월 29일, 동아쏘시오그룹이 AI 신약개발 플랫폼 ‘AIDDP(AI Drug Discovery Platform)’의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플랫폼은 신약 후보물질의 설계부터 예측, 분석 결과의 시각화와 관리까지를 하나의 환경에서 통합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수년, 혹은 수십 년이 걸리던 신약 연구의 긴 여정을 인공지능이라는 도구를 통해 혁신적으로 단축하겠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병을 앓는 이들을 위한 반가운 소식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부지런히 정보를 처리하는 컴퓨터의 이미지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문득 이 고도화된 기술이 인간의 어떤 본성을 움직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마음은 자못 절실하다. 그러나 그 절실함에 이끌려 효율과 통제의 길만을 쫓다 보면, 우리는 어쩌면 생명의 복잡성을 ‘처리해야 할 데이터’로만 축소해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모든 가능성을 낚아채는 ‘지능형 그물’의 탄생

AIDDP의 역할은 방대한 분자생물학적 데이터를 초고속으로 학습하고, 인간 연구자가 미처 떠올리지 못한 후보물질의 조합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른바 ‘통섭’의 시대에 기계가 인간의 뇌를 보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의 시선이 머물러야 할 지점은, ‘인간의 지성을 확장한다’는 이 기획이 실제로는 ‘모든 것을 미리 예측하고 제어할 수 있다’는 인간의 오랜 욕망을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동아쏘시오그룹이 발표한 지능형 플랫폼의 청사진을 읽노라면, 신약 개발이라는 불확실성의 영역을 완벽한 하나의 체계 안에 가두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인다. 이는 거대한 그물을 바다 깊숙이 드리워 모든 고기를 쓸어 담으려는 어부의 심정과도 닮았다. 하지만 이 거대한 그물이 아무리 촘촘해도, 인간의 병과 생명 현상은 그물코 사이를 빠져나가는 미지의 영역을 늘 남겨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도구를 쓰는 기술과 도구의 함정

고대 중국의 철학자 장자(莊子)는 ‘외물(外物)’ 편에서 기술에 관한 깊은 통찰을 남겼다.

筌者所以在魚, 得魚而忘筌. — 「莊子·外物」

전자소이재어, 득어이망전.

“통발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 있는 것이니, 물고기를 잡으면 통발은 잊어버린다.”

장자의 이 말은 본래 언어와 의미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비유로 등장한다. 말(言)과 통발(筌)은 모두 진리나 물고기라는 ‘실재’를 포획하기 위한 도구일 뿐, 목적에 도달한 뒤에는 그 존재가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그렇다면 AIDDP는 어떠한가. 이 플랫폼은 물고기를 잡기 위한 가장 정교한 통발임에 분명하다. 정보기술 계열사 DAI와 동아에스티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이 통발은 인간이 수작업으로 하던 추측과 반복 실험의 낭비를 줄여줄 것이다. 하지만 ‘득어이망전’의 진정한 의미는 도구를 경멸하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통발에 매몰되지 말라는 경고다. AI가 제시한 후보물질이라는 ‘물고기’가 잡히는 순간, 우리가 그 물고기를 신약의 완성으로 착각하고 그 뒤에 감춰진 생명의 더 큰 지도를 외면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통발이 도리어 인간을 옭아맨 꼴이 아니겠는가.

노자가 일러준 대교약졸의 마음

AIDDP의 화려한 분석 속도와 시각화 기술 뒤에는 편안함과 효율에 대한 인간의 갈망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속도를 추구하는 마음 자체는 비난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유려하게 작동하는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 앞에서 우리가 쉽게 빠지는 착각이 있다. 바로 ‘기술적으로 완벽한 것이 곧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다’라는 믿음이다. 2,500년 전 노자(老子)는 진정으로 큰 기술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大巧若拙. — 「道德經 45장」

대교약졸.

“가장 뛰어난 솜씨는 서툰 듯이 보인다.”

이는 단순히 기술을 부정하는 논리가 아니다. 세상의 이치는 복잡하며, 진정한 완성은 도리어 모자란 듯하고 부족한 듯한 모습을 띠기 마련이라는 역설이다. AI 플랫폼이 매끄럽게 물질을 설계하고 예측하는 모습은 언뜻 보기에 매우 ‘교묘한(巧)’ 기술이다. 그러나 생명 현상 안에는 수십억 년의 진화가 켜켜이 쌓아온 조화가 존재한다. 인체는 하나의 후보물질이 들어왔을 때 우리 예측 모델이 계산하지 못한 변수를 항상 품고 있다. 그 알 수 없는 변수들 앞에서, AI의 계산 속도에만 의존하는 태도는 오히려 졸렬해질 위험이 있다. 노자의 ‘졸(拙)’은, 기술에 너무 능한 나머지 생명의 진정한 소리에 귀를 막지 말고, 마치 처음 배우는 사람처럼 생경한 현실 하나하나를 존중하라는 가르침이 아닐까.

이 시대의 신약 개발자들에게 AIDDP는 눈과 손이 되어줄 것이다. 그러나 ‘대교약졸’의 태도란, 이 플랫폼이 내놓는 ‘만점짜리 답안지’ 같은 결과물 앞에서도 “단 한 가지라도 모르는 것은 무엇일까”라고 한 번 더 망설이는 마음이다. 마치 숙련된 장인이 상황을 더 넓게 보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근육을 느슨하게 푸는 것처럼 말이다.

끝나지 않은 질문

노자의 말을 빌리자면, 가장 큰 소리는 들리지 않고(大音希聲), 큰 형상은 정해진 형태가 없다(大象無形). 인간의 질병을 고치려는 그 숭고한 바람 앞에 AI는 분명 하나의 혁명적인 불씨를 제공해주었다. 다만 이 불이 더 큰 세상을 비추기 위해서는, 우리의 지식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생명의 어두운 구석을 향한 경외심이 남아 있어야 한다. AIDDP의 데이터 시각화 화면 속에서 모든 것이 다 밝혀졌다고 환호하는 순간, 우리는 어쩌면 우리 자신의 코끝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 낯선 도구 앞에서, 우리는 주인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또 하나의 미궁 앞에 서서 겸손을 배워야 할까.

댓글

가장 많이 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