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묻는다, 우리의 노력은 어디를 향하는가

2026년 인공지능 대전환기, 주역 건괘의 '자강불식'과 곤괘의 '후덕재물'을 통해 기술 발전의 이면에 필요한 인간다움의 방향을 사유하는 동양 인문학 에세이.

2026년 7월, AI가 밀려온다

2026년 7월 22일, 오늘 아침 뉴스는 온통 ‘인공지능’이다.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은 세르게이 브린의 AI 전략에 발맞춰 마이애미 사무실을 4배로 늘린다고 한다. 공동 창업자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 오래됐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 회사의 AI 방향을 이끄는 핵심 인물이다. 같은 날 두산그룹은 AI 반도체의 핵심 소재인 동박적층판(CCL)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며 첨단 사업의 결실을 보고 있다는 소식이다. JT저축은행은 전 직원을 대상으로 생성형 AI 데이터 분석 교육을 실시했고, 서울대와 카이스트를 비롯한 전국 대학들은 인공지능 교육 프로그램을 공동 개발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하지만 유독 한 편의 뉴스가 내 시선을 오래 붙잡았다. 유네스코가 인정한 한국의 정신문화 유산인 소수서원을 조명하는 기획 기사였다. 그 기사의 마지막 문장은 이랬다. “인공지능이 지식을 가르치는 시대가 오고 있다. 그러나 인간다움을 가르치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기술의 정점을 향해 내달리는 치열한 흐름 속에서, 문득 그 속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우리는 지금 어디를 향해 이토록 쉬지 않고 나아가고 있는가.

멈추지 않는 하늘의 도전, 그리고 경계해야 할 것

오늘날 AI를 향한 인류의 집단적 열망은 마치 거대한 강물과 같다. 창업자가 직접 전면에 나서고, 대기업은 생존을 걸고 소재에 투자하며, 금융권과 대학은 뒤처지지 않기 위해 조직 전체를 재무장한다. 이 모든 움직임의 중심에는 ‘멈추면 도태된다’는 시대정신이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생존을 건 존재론적 불안의 발로다.

동양 고전에서 이처럼 쉼 없이 나아가는 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주역(周易)』 건괘(乾卦)의 가르침이다. 건괘는 하늘을 상징하며, 쉬지 않고 힘차게 운행하는 강건함을 생명의 근원으로 삼는다. 그런데 『주역』은 이 무한한 도전을 칭송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건괘 맨 위 여섯 번째 효(爻)에 이르면 갑자기 이런 경고가 등장한다. “나는 용이 하늘 끝까지 올라가니, 후회할 일이 생긴다(亢龍有悔).” 아무리 강한 상승의 기운도 멈출 줄 모르고 끝까지 치달으면 반드시 후회할 일이 생긴다는 뜻이다.

오늘날의 AI 경쟁 구도를 보면, 우리는 건괘의 ‘비약하는 용’이 되어 힘차게 날아오르고 있지만, 어쩌면 ‘항룡유회’의 경계선 근처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지식을 다운로드하는 기술은 하늘을 찌르듯 발전하고 있지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따뜻함과 지혜의 영역은 과연 그 속도를 따라가고 있는가. 소수서원 기사가 던진 질문은 여기에 있다. 학문이 많아지는 것과 인간다워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 우리는 불안 때문에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온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 말이다.

땅이 품는 덕, 어떻게 기술을 완성하는가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주역』에는 하늘의 괘인 건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땅을 상징하는 곤괘(坤卦)가 있다는 점이다. 하늘의 정신이 ‘자강불식(自彊不息)’, 즉 멈추지 않는 실천이라면, 땅의 정신은 ‘후덕재물(厚德載物)’이다. 두터운 덕으로 만물을 포용하여 실어 나르는 태도다. 기술의 비약이 하늘의 영역이라면, 그 기술을 사회와 인간에게 맞게 다듬고 의미를 붙이는 것은 땅의 영역이다.

필자가 보기에 오늘 뉴스들은 바로 이 건곤(乾坤)의 긴장을 보여준다. 알파벳의 공격적 투자와 두산의 첨단 소재 개발은 자강불식의 에너지가 만들어낸 장관이다. 반면, 대학들이 형식적 출범 선언 대신 학생들의 공동 수업과 연구 과제에 시간을 쏟았고, 소수서원이 여전히 ‘인간다움’을 논하는 장면은 바로 후덕재물의 정신이 발현되는 현장이다. 기술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인간의 품 안으로 들여 안는 것. 이것이 바로 땅의 두터움이 필요한 시점이다. 『주역』은 하늘과 땅이 조화를 이뤄야 비로소 만물이 자란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에겐 기술의 탄생이 아니라, 기술을 길러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天行健, 君子以自彊不息 — 「周易·乾卦 象傳」
천행건 군자이자강불식

“하늘의 운행이 굳건하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는다.”

이 구절은 『주역』 첫 괘인 건괘의 「상전(象傳)」에 전한다. 공자가 하늘의 형상을 보고 남긴 해석이라고 전해지며, 동양 인문학에서 인간의 실천 의지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꼽힌다. 우리는 흔히 이 문장만 떼어서 “열심히 살자”는 주문처럼 외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이 문장이 곤괘와 짝을 이룰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사실이다.

쉬지 않는 노력에도 방향은 있어야 한다

원문에서 ‘건(健)’은 단순히 몸이 튼튼한 상태가 아니라, 우주의 운행처럼 꺾이지 않고 지속되는 정신의 힘을 뜻한다. 그리고 ‘자강(自彊)’에서 ‘강(彊)’은 남을 제압하는 무서운 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내적 주체성이다. 노자는 남을 이기는 것을 힘(有力)이라 하지 않고 자신을 이기는 것을 진정한 강함(强)이라 했는데, 여기서도 결이 비슷하다. 즉 자강불식은 단순히 밤을 새워 코딩하거나, 남보다 빠르게 생성형 AI를 도입하는 외형적 속도가 아니다. 자신의 내면을 단단히 세우며, 올바른 방향으로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태도다.

이를 최근 JT저축은행 직원들의 AI 교육 사례에 비추어 보면 이해가 쉽다. 임직원들이 AI 기반 데이터 분석을 배우는 것은 ‘자강’의 과정이다. 하지만 그 배움의 끝이 단순히 대출 실적을 올리거나 연봉을 올리기 위함에만 머문다면, 그것은 건괘의 ‘항룡’이 되어 언젠가 후회할 수 있다. 반면, 더 정확한 데이터로 고객의 신용 위기를 미리 발견하고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기술에 인간의 덕을 실어 나르는 곤괘의 실천이 되는 셈이다. 같은 AI 도구라도 어떤 정신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그 결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노력의 결, 그리고 인간의 몫

오늘 아침 이 뉴스들을 읽으며, 나는 강의실에서 만난 한 학생을 떠올렸다. 그는 챗GPT를 이용해 과제를 거의 완벽하게 작성해 왔지만, 정작 “너는 이 주제에 대해 어떤 마음이 들었니?”라는 질문을 받자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인공지능이 ‘아는 것’을 완벽하게 대체하는 시대, 정작 인간에게 남은 것은 ‘느끼고 사유하는 것’의 깊이인지도 모른다. 소수서원이 수백 년 전 그곳에서 가르쳤던 것도, 아마 똑똑한 제자를 키우는 일보다는 올곧게 세상을 응시하는 한 인간을 길러내는 일이 아니었을까.

자강불식의 길은 멈추지 않는 아름다운 도전이지만, 그 노력이 자칫 공허한 경쟁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곤괘의 포용이 반드시 필요하다. 2026년, 인공지능의 거대한 물결 앞에서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더 빠른 반도체나 더 큰 사무실이 아니라, 그 기술을 어떤 마음으로 담아낼지에 대한 성찰일지 모른다.

오늘, 당신의 자강불식은 어디를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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