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는 기계가 일상이 될 때, 우리는 무엇을 접고 펼치는가 — 갤럭시 Z 시리즈 열풍에 부쳐

7년의 기술, 한눈에 펼쳐지다
오늘 아침 뉴스는 유난히 ‘접히는’ 스마트폰 이야기로 가득했다. 2026년 8월 11일, 삼성전자가 2019년 첫 ‘갤럭시 폴드’부터 최근 출시된 ‘갤럭시 Z8 시리즈’까지 7년간의 폴더블 기술 역사를 한자리에서 전시한다는 소식이다. 힌지(경첩)의 진화 과정과 분해된 내부 부품까지 공개하며 기술의 계보를 선보인다고 한다. 같은 날, 갤럭시 Z 폴드8의 예상치 못한 흥행으로 생산량을 100만 대까지 늘렸다는 기사도 눈에 띄었다. 한국 사전예약 144만 대 중 상당수를 차지하며 ‘와이드 폴더블’이라는 새로운 형식이 시장의 확실한 선택을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곧 열리는 독일 ‘게임스컴’에서는 이 Z 폴드8 울트라가 6K 게이밍 모니터와 함께 모바일 게이밍의 정점을 찍을 신제품으로 소개될 예정이라고 한다.
새로운 기기를 손에 쥐고 설레할 소비자들의 모습을 상상하자면, 이 모든 뉴스는 지극히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읽힌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잠시 멈춰 생각해 본다. 우리는 매일 수없이 많은 것을 접고 편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이불을 접고, 출근길엔 지하철 문이 접히듯 열린다. 그런데 유독 ‘접는 기계’ 앞에서 우리가 이토록 열광하는 마음의 밑바닥에는, 단순한 신기술에 대한 환호가 아닌, 더 복잡하고 오래된 무언가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기계를 접는 것과 마음을 거두는 것
나는 이 뜨거운 관심 속에서 ‘인간의 확장 욕구’를 읽는다. 과거의 기술이 인간의 손과 발을 연장하는 도구였다면, 지금의 기술은 인간의 욕망 그 자체를 물리적 형태로 구현해 낸다. 더 큰 화면을 원하지만 주머니에는 쏙 들어가길 바라는 마음. 생산성과 몰입감은 놓치지 않되, 그 도구가 내 삶의 공간을 잠식하지는 않길 바라는 이중적인 마음. 이것은 단순한 편리함의 차원을 넘어, 유한한 신체 조건을 지닌 인간이 무한한 디지털 세계를 움켜쥐고 싶어 하는 오래된 열망에 가깝다.
여기서 나는 불가의 오래된 성찰을 떠올린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의 감각 기관은 더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더 강렬한 자극을 원하게 된다. 6K 게이밍 모니터와 울트라 모바일 기기가 선사할 압도적인 현실감은, 그 자체로 우리의 감각을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그런데 그 화려한 감각의 끝에 정말 우리가 원하는 ‘만족’이 있을까. 공교롭게도, 그 어떤 최신 기기도 영원히 새로울 수는 없다. 더 큰 화면, 더 선명한 화질, 더 빠른 속도는 잠시 우리를 매혹시키지만, 그것이 ‘충분함’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마치 갈증을 느껴 소금물을 마시는 것처럼, 자극은 일시적 해소와 동시에 더 큰 갈증을 불러온다. 그래서 우리는 1년, 2년이 아닌 7년이라는 기술 진화 앞에서 여전히 ‘다음 단계’를 갈망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릇은 쓰임에 있지 않다”는 역설
이 지점에서 나는 노자가 남긴 하나의 역설적인 문장을 꺼내어 조용히 펼쳐놓고 싶다. 기계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나 성능에 대한 맹목을 경계한 통찰이다. 물론 노자의 시대에는 접는 유리가 없었겠지만, 그가 바라본 그릇과 공간에 대한 사유는 놀랍도록 오늘날 우리의 상황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 — 「道德經 11장」
고유지이위리, 무지이위용
“있음(有)이 이로움을 주는 것은, 없음(無)이 그 쓰임이 되기 때문이다.”
텅 빈 공간이 만들어 내는 창조의 순간
이 구절이 나온 맥락은 이렇다. 노자는 수레바퀴와 그릇, 그리고 방을 예로 든다. 수레바퀴의 서른 개 바퀴살이 모이는 중심 축에는 빈 곳이 있어야 수레가 굴러간다.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 때도, 가운데가 비어 있어야 물을 담을 수 있다. 벽과 지붕이 있어도 방이 비어 있어야 사람이 살 수 있다. ‘있음(有)’은 물질, 형체, 기술, 스펙을 말한다. 이로움을 주는 것은 분명히 이 물리적 실체다. 접히는 힌지, 밝은 화면, 강력한 칩셋이 없다면 기기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물리적 껍질이 만들어낸 비어 있음(無) 에 있다.
노자에게 ‘無’는 결코 결핍이나 허무함이 아닌, 가능성을 품은 근원적 공간이다. 아무것도 없기에 무엇이든 채울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 관점으로 오늘의 갤럭시 Z 폴드8을 바라보면 어떨까. 우리가 접고 펼치는 그 매끈한 유리창은 사실 정보라는 내용물을 담기 위한 정교한 그릇일 뿐이다. 기술자들이 수년간 개발한 것은 결국 ‘더 얇고 완벽한 그릇’이다. 그들이 극복하려 한 것은 힌지의 단차와 화면의 주름, 즉 비어 있는 평면을 온전히 비어 있게 만들기 위한 집요한 시도였다. 결국 이 기계의 진정한 걸작은 더 많은 부품을 넣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더 완벽한 ‘빔’의 상태를 만들어 낸 데에 있다. 이 넓은 텅 빈 공간에 우리는 게임을 채우고, 영화를 채우고, 업무를 채우며 각자의 창조적 몰입을 실현한다.
교단에서 학생들과 이것을 이야기할 때면, 한 친구가 이렇게 묻곤 했다. “그럼 결국 기술자는 ‘없음’을 위해 평생을 사는 거네요?” 사실 그 말이 정곡을 찌른다. 좋은 기계라는 것은 종국에 가서는 사용자에게 그 기계의 존재를 잊게 만드는 힘이다. 기계는 이로움(利)을 제공하는 데 그치고, 사용자가 그 위에 올려놓을 생각과 경험이 진짜 쓰임(用)이다. 가장 진보한 기술은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 이 동양의 오래된 지혜와 그 궤를 같이하는 느낌이다.
비움의 감각을 되찾는 법
이 가르침이 오늘 우리의 일상에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 아마도 그것은 ‘기계를 대하는 태도’에 관한 질문일 것이다. 우리는 흔히 새로운 기기를 구매할 때 성능표와 기능을 꼼꼼히 따지지만, 내가 그 기계를 통해 비우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즉 어떤 ‘사용의 틈’을 원하는지는 깊게 묻지 않는다. 갤럭시 Z 시리즈의 진정한 가치는 펼쳤을 때 나타나는 거대한 화면의 빈 공간에서 온다. 그 공간을 내가 업무용 창으로 가득 채우며 ‘생산성의 노예’가 될 것인지, 아니면 한 편의 글과 잔잔한 음악으로 마음을 위한 여백을 남길 것인지는 전적으로 나의 선택에 달린 일이다.
기계가 아무리 접히고 펼쳐져도, 그것을 잡은 손과 그 앞에 앉은 마음이 끊임없이 조바심과 불안으로 분주하다면, 그 어떤 넓은 화면도 진정한 충만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더 많은 정보가 더 빈틈없이 나를 파고들 뿐이다. 한여름, 가장 뜨거운 신제품 소식 속에서 문득 자신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이 좋은 기계의 빈 공간에 정작 무엇을 담으며 살고 있는가. 그리고 그 수많은 알림과 자극 사이로, 나를 진정으로 살리는 ‘비움의 순간’을 얼마나 허락하고 있는가. 기술은 이제 충분히 성숙했다. 남은 것은 그것을 채우는 인간 지혜의 몫이다.
그래서일까, 찬란한 7년의 기술 역사를 관람할 관람객들에게 바라는 마음은 단 하나다. 경이로운 힌지와 6K 화질에 감탄하는 그 순간에도, 당신의 삶에 접히지 않고 영원히 펼쳐져 있을 텅 빈 여백 한 자락을 잃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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