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넘쳐나는 시대, 왜 공자는 '군자불기'라 했을까

2026년 8월 14일 뉴스에 등장한 전문가 영입·지원 소식을 공자의 군자불기로 다시 읽는다. 전문성을 부정하지 않고, 한 가지 기능에 갇히지 않는 사람의 얼굴을 묻는다.

오늘 뉴스에 유난히 많이 등장한 ‘전문가’

2026년 8월 14일. 삼성전자 DS부문은 딥러닝·비전 AI 분야 권위자 한보형 펠로우와 데이터 엔지니어링 전문가 한태린 상무를 영입했다고 한다. 강남구는 AI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기업 9곳에 전담 전문가를 배치해 사업모델과 투자유치 자료를 보완해준다. 미래에셋생명·삼성생명 등 생명보험주에 대해서도 증권 전문가가 자본 건전성과 주주환원율을 근거로 전망을 내놓는다. 현대건설은 조경 설계사·예술가·디자이너 같은 외부 전문가와 협업해 K-디자인 어워드에서 최다 수상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어느 때보다 전문가가 필요하고, ‘전문가’라는 이름이 신뢰의 증표처럼 쓰이는 날이다.

그런데 장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좀 낯설다. 우리는 ‘전문가’라는 단어에 기대면서도, 정작 어떤 전문가가 어떤 사람인지, 그 전문성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잘 묻지 않는다. AI 전문가가 오면 회사가 바뀔까. 전담 전문가가 붙으면 사회문제가 풀릴까. 물론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라는 라벨이 붙는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을 하나의 기능으로만 바라보게 되는 건 아닐까.

전문가는 그릇인가, 사람인가

공자는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 器는 밥그릇, 제사 그릇, 연장 같은 ‘정해진 용도가 있는 도구’를 뜻한다. 그릇은 쓰임이 분명하다. 밥그릇은 밥을 담고, 술잔은 술을 담는다. 전문가라는 말도 비슷하다. ‘AI 전문가’는 AI를, ‘조경 전문가’는 조경을, ‘증권 전문가’는 증권을 다룬다. 그 경계가 분명할수록 우리는 안심한다. 하지만 공자의 경고는 여기에 있다. 사람이 하나의 그릇으로 전락하면, 그 쓰임에 갇힌 나머지 사람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늘 뉴스에서 삼성전자가 외부 전문가를 영입한 이유는 ‘AX 역량 강화’다. 인공지능 전환은 알고리즘만으로 되지 않는다. 반도체 공정을 이해하고, 조직의 의사결정 문화를 바꾸고, 데이터가 흐르는 현장의 말을 들어야 한다. 딥러닝 전문가가 코드만 잘 짠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강남구의 AI 사회문제 해결 기업 지원도 마찬가지다. 기술 전문가가 사업모델을 손봐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문제는 행정과 주민, 현장의 목소리가 얽힌 문제다. 전문가 한 사람이 ‘기술’이라는 그릇 안에만 머물면, 정작 해결해야 할 사람의 문제는 놓치기 쉽다.

전문성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문제는 전문가를 그릇으로만 대접하는 태도다. 한 사람을 ‘OO 전문가’로 부르는 순간, 우리는 그 사람에게서 그 기능만 꺼내 쓰고 나머지는 지워버리기 쉽다. 공자가 말한 군자는 많은 재주를 가졌어도 한 가지 쓰임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 사람이다.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 — 논어의 짧은 문장이 던지는 물음

君子不器
군자불기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

이 구절은 『논어』 「위정」 편에 나온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정치와 배움을 이야기하던 자리에서, 사람이 갖추어야 할 방향을 단 세 글자로 압축한 말이다. 君子는 당시 지도자 또는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을 가리킨다. 不器는 ‘그릇이 아니다’, ‘도구에 머물지 않는다’는 뜻이다. 여기서 器는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하나의 용도에 고정된 존재를 말한다.

우리말에 “한 우물만 판다”는 말이 있다. 깊은 전문성을 기르는 태도로는 훌륭한 말이다. 그런데 우물을 파는 사람이 우물 속에만 있으면 하늘을 볼 수 없다. 공자의 말은 그 우물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우물을 파면서도 때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라는 말로 읽힌다. 전문성은 깊이 파는 일이지만, 사람은 파인 구멍의 모양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한 우물을 파되, 우물 밖 하늘을 보는 사람

『논어』에서 공자는 “군자는 두루 통하고, 소인은 한 곳에 치우친다”는 뉘앙스의 말을 여러 번 한다. 君子不器도 그 결을 같이한다. 공자 자신도 젊어서 여러 천한 일을 익혔고, 제자들은 정치·예악·문학·덕행 등 서로 다른 재능을 가졌다. 그 재능은 소중하지만, 재능 자체가 사람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공자의 생각이었다.

이를 오늘의 일상에 비추어 보자. 회사에서 데이터 전문가로 불리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의 하루는 SQL과 대시보드로 가득하다. 그런데 그가 만드는 숫자가 실제 영업 현장에서 어떤 고객의 어떤 고민과 맞닿아 있는지 모른다면, 그는 뛰어난 ‘그릇’일 수는 있어도 좋은 전문가라고 하기는 어렵다. 반대로 미용 봉사를 한 아산교육지원청 교직원들처럼, 평소의 역할과 다른 기술을 전문가에게 배워 어르신들의 머리를 손질한 사람들은 ‘직업의 그릇’에서 잠시 벗어나 이웃으로 존재한다. 그런 순간이 우리를 사람으로 남게 한다.

전문가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에 가깝다. ‘전문가다’라는 상태가 아니라 ‘전문적으로 이해하고, 연결하고, 책임지는 일’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AI 전환도, 조경 설계도, 사회문제 해결도 결국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한다. 하나의 기술만 깊이 파는 사람은 많지만, 그 기술이 사람에게 닿도록 다리를 놓는 사람은 드물다. 공자가 君子不器라고 한 것은 바로 그 드문 사람의 얼굴을 잊지 말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오늘 수많은 ‘전문가’ 소식 앞에서, 우리는 한 번쯤 물어야 한다. 나는 지금 한 가지 일을 깊이 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일을 통해 사람을 보고 있는가. 그릇이 아니라 사람으로.

댓글

가장 많이 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