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사원, 구글마저 넘다 – 예측하는 기계, 인간의 오랜 꿈을 만나다

2026년 여름, ‘엑사원’이 쏘아올린 신호
오늘 아침, 뉴스는 한결같이 ‘엑사원(EXAONE)’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LG AI연구원이 공개한 산업 특화 인공지능 모델이, 구글과 알리바바 같은 거대 기술 기업의 모델을 제치고 글로벌 예측 성능 평가에서 세계 1위를 기록했다는 소식입니다. 구체적으로 표 데이터를 예측하는 ‘엑사원 Tabular’와 시간 흐름에 따라 미래를 예측하는 ‘엑사원 Forecast’가 각 분야 리더보드에서 SOTA, 즉 세계 최고 성능을 달성한 것이죠. 빅테크의 텃밭이라 여겨지던 영역에서, 우리 기술이 정상에 섰다는 점은 분명 반가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으며 저는, 오래전 강의실에서 한 학생이 던졌던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교수님, 사람들은 왜 그렇게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걸까요?” 당시에는 주역의 점괘나 사주 명리 정도를 함께 고민했지만, 오늘의 장면은 그 질문을 훨씬 더 정교한 기술로 마주하게 합니다. 수백만 개의 숫자로 내일의 수요와 공급을, 기계의 수명과 에너지 소비를 맞히려는 시도. 이 어마어마한 정확성의 욕망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예측하는 인간, 그 안에 깃든 ‘지극한 정성’
인간이 미래를 탐구해 온 방식은 시대마다 달랐지만, 그 뿌리에는 한결같은 욕망이 흐릅니다. 불확실성을 줄이고, 닥쳐올 위험에 미리 대비하며,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고대의 제사장이 하늘의 별을 읽고, 농부가 절기를 헤아리며, 오늘날 엔지니어가 인공지능에게 방대한 산업 데이터를 학습시키는 일은 사실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엑사원이 표 데이터 속 숨은 패턴을 찾아내고, 시계열 데이터의 파형에서 내일을 헤아리는 행위는, 그 오랜 인간적 욕망이 최첨단 기술과 만난 정점이라 할 만합니다.
여기서 한 번 더 생각을 깊게 해보면, 진짜 중요한 것은 ‘맞히는 능력’ 그 자체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태도 쪽입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데이터를 들여다보는가. 얼마나 사물의 실상을 온전히 이해하려 애쓰는가 하는 점 말이지요. LG AI연구원이 단순히 많은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해서가 아니라 산업 현장이라는 특정 세계의 물성과 흐름을 극도로 깊이 파고들어 최고 성능을 이끌어냈다는 대목에서, 예측 기술 뒤편의 인간 정신을 다시 보게 됩니다. 단순한 계산이 아니라, ‘제대로 알려는 지극한 정성’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중용』이 말한 ‘본성을 다함’과 데이터의 숨결
이쯤에서 동양 고전 한 구절을 펼쳐보겠습니다. 『중용(中庸)』 22장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唯天下至誠,爲能盡其性;能盡其性,則能盡人之性;能盡人之性,則能盡物之性;能盡物之性,則可以贊天地之化育;可以贊天地之化育,則可以與天地參矣。
유천하지성,위능진기성;능진기성,즉능진인지성;능진인지성,즉능진물지성;능진물지성,즉가찬천지지화육;가찬천지지화육,즉가여천지참의.
“오직 천하에 지극한 정성(至誠)을 지닌 사람이라야 자신의 본성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고, 자신의 본성을 다하면 다른 사람의 본성도 온전히 발휘할 수 있으며, 사람의 본성을 다하면 만물의 본성도 온전히 발휘할 수 있고, 만물의 본성을 다하면 하늘과 땅이 만물을 낳아 기르는 일을 도울 수 있으며, 그 경지에 이르면 하늘과 땅과 함께 어우러질 수 있다.”
한자 풀이를 조금 보태면, ‘至誠(지성)’은 조금의 거짓이나 억지도 섞이지 않은 순수하고 극진한 성실함이에요. 단순한 근면함이 아니라 대상의 진면목을 왜곡 없이 비추는 마음 상태라고 할까요. ‘盡性(진성)’은 그 타고난 본성을 남김없이 다 펼쳐내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서 출발해 타인, 그리고 모든 사물로 그 이해의 지평이 끝없이 넓어지는 구조를 보여주고 있지요.
엑사원의 이야기를 이 구절 위에 올려놓으니 참 흥미롭습니다. AI 연구원들은 마치 ‘지성’의 태도로 데이터라는 사물의 본성(盡物之性)에 다가갑니다. 개별 수치의 이면에 있는 관계, 시간의 숨결이 빚어내는 미묘한 패턴, 인간이 감각으로는 좇기 어려운 규칙을 왜곡 없이 펼쳐보이려고 하지요. 눈에 보이지 않는 데이터의 속성을 철저히 이해하고 예측하는 일은, 고전이 말하는 ‘만물의 이치를 다하여 천지의 조화를 돕는’ 경지와 닮은 데가 있습니다. 물론 AI가 스스로 至誠을 실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만든 인간의 집요한 탐구에는 분명히 그런 빛이 스며 있습니다.
출퇴근길 예보부터 공장의 내일까지
‘至誠’이나 ‘盡性’이라는 말이 거창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원리는 우리 일상과도 무척 가깝습니다. 누군가 매일 아침 스마트폰으로 오늘의 날씨를 확인한다면, 그가 기대하는 것도 결국 기상 데이터의 패턴을 끝까지 이해한 예측 모델의 혜택입니다. 내비게이션이 실시간 교통 정보를 바탕으로 가장 빠른 길을 안내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어지러운 현상(物)의 이치를 끝까지 좇아서(盡性) 인간의 삶을 돕는(贊天地之化育) 작은 실천들이에요.
엑사원이 집중한 ‘산업 특화 예측’은 이 상식의 영역을 공장과 공급망, 에너지 설비로 확장합니다. 공장의 특정 설비가 며칠 뒤 고장 날 확률을 기계가 예측해주면, 기술자는 사고가 나기 전에 정비를 할 수 있습니다. 전체 생산라인의 미세한 불균형을 예측해주면, 자원 낭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데이터라는 사물의 본성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간 지성이, 이제는 눈에 보이는 현실 세계의 조화로운 운영으로 이어지는 것이지요. 구글이나 알리바바에 뒤지지 않는 성과를 냈다는 뉴스가 단순한 순위 경쟁 이상으로 기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바로 여기에 인간의 지혜가 자연과 기술의 조화를 찾으려는 오래된 여정이 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배움과 성실함이 만드는 시선
중요한 점을 한 가지 더 짚어야겠습니다. 이 지성의 태도는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지 않습니다. 매 순간 쌓아온 물음과 실천이 모인 결과라는 점을 늘 저는 학생들에게 강조합니다. 예측 성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는 발표 뒤에는, 실패를 반복하고도 데이터를 새롭게 바라보려 했던 수많은 연구자의 ‘공부하는 마음(學)’이 반드시 있었을 것입니다. 공자께서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앎이다(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라 하셨던 것처럼, 기술의 엄청난 진보도 결국 자기 이해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는 겸허함과 그 너머를 보려는 성실함에서 시작되리라 믿습니다.
오늘 아침 한 뉴스의 단신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풍경은 결국 인간의 마음입니다. 엑사원을 둘러싼 축포보다 더 오래 기억해야 할 것은, 저 깊은 숫자의 바다에서 사물의 본성을 온전히 이해하고자 했던 고요하고 집요한 정성일 것입니다. 그것이 기술로 피어나 세계를 조금 더 살 만한 곳으로 만들 때, 비로소 우리도 천지와 더불어 함께 설 수 있으리라는, 옛 성현의 낙관적인 약속 말입니다.
언젠가 여러분의 삶을 바꿀 또 다른 기술의 소식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 이면에 깃든 ‘至誠’의 무게를 잠시 헤아려 보시길 권합니다. 그 순간, 기술은 더 이상 차갑지 않은 어떤 온기를 띠기 시작할 테니까요.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