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조의 성을 쌓는 마음, ESG로 다듬다 ― 현대건설에게 배우는 '지키는 법'

강남을 넘어 목동까지, 다시 불 붙은 도시정비의 판
오늘 아침 경제면을 펼치자 익숙한 이름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현대건설, GS건설, 삼성물산. 이들이 올 한 해 서울 도시정비사업 시장에서 거둬들인 수주 실적만 벌써 7조 원에 달한다는 보도였다. 삼성물산은 강남권에 ‘래미안 벨트’를 두르듯 알짜 사업지를 하나둘 묶고 있고, 현대건설과 GS건설은 이른바 ‘7조 클럽’의 양강 구도로 부상했다. 곧 시작될 목동 4·7단지 입찰을 앞두고 여러 대형 건설사가 벌써부터 채비를 갖추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목동 7단지는 기존 용적률이 125%에 불과해 사업성이 특히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곳. 아마 며칠 뒤면 누군가의 수주 소식이 헤드라인을 장식할 테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아쉬운 뒷맛을 삼켜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 흥미롭게도, 이 거친 수주 경쟁의 한복판에 선 현대건설이 같은 날 정반대의 얼굴로 나타났다. 바로 ‘2026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 소식이다. 기사에 따르면 이 보고서는 글로벌 ESG 공시 기준에 맞춰 데이터 내부통제 프로세스를 대폭 강화했으며, 환경·사회·지배구조 성과 전반을 투명하게 공개했다고 한다. 7조 원의 수주고를 올리기 위해 달려드는 기업이 동시에 수치를 꼼꼼히 검증하고,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증명하는 보고서를 써낸다는 사실. 이 두 장면이 겹쳐지자, 나는 문득 ‘진짜로 튼튼한 집을 짓는다는 건 무엇인가’ 하는 질문 하나가 마음에 걸렸다.
시장을 이기면 강하고, 자신을 이기면 오래 간다
몇 년 전만 해도 대형 건설사의 실적은 오로지 수주액과 공사비로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다르다. 현대건설이 공을 들여 만든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들여다보면, 그들이 이제는 자신의 성적표를 ‘눈에 보이는 건물’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신뢰’로 옮겨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보고서가 강조하는 건 글로벌 공시 기준에 맞춘 데이터 내부통제다. 쉽게 말해 “ESG 성적을 조금이라도 부풀리지 않았고, 그걸 믿을 수 있게 하겠다”는 선언이다. 이윤을 극대화해야 하는 기업이 스스로 잣대를 들이대고 자기의 민낯을 증명하겠다고 나선 셈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학생들에게 종종 해주는 오래된 분별 하나가 떠올랐다. 대체로 사람들은 경쟁에서 이기는 능력을 실력이라 믿는다. 상대의 움직임을 읽고 더 빨리 움직이며, 남보다 먼저 목표를 차지하는 재주야말로 탁월한 재능이라 여긴다. 그러나 노자는 이렇게 답했다. 남을 이기는 것은 힘이지만, 자기를 이기는 것은 그것보다 단단한 힘이라고. 요즘 현대건설을 비롯한 선도 기업들이 ESG 보고서에 심혈을 기울이는 모양새를 보면, 그들은 이제야말로 건설업의 제2막, 곧 ‘자기를 이기는 싸움’에 진지하게 뛰어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7조 원을 움켜쥐는 일은 분명 놀라운 힘이지만, 그 돈을 어떻게 관리하고 어떤 원칙으로 쌓았는지 증명하는 일이야말로 더 은근하고 질긴 힘 아닐까.
도덕경이 묻는다 — 당신은 쌓기만 하고 쌓은 자리를 보았는가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사회는 말 그대로 ‘건설적(for constructive reason) 불안’ 속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파트값이 오르면 뒤늦게라도 청약통장을 만들고, 재건축 호재가 들리면 커뮤니티 게시판을 훑으며 덜컥 마음을 졸인다. 한 채라도 소유하는 것만이 인생의 안전망이라고 여기는 이 마음은, 건설사들이 초고층 빌딩을 세우고 수조 원대 수주 잔치를 벌이는 바탕에 깔린 커다란 정서다.
동양 사상에서 이처럼 ‘쌓고 소유하는 데 집착하는 태도’를 경계한 이들은 한둘이 아니다. 가령 법구경은 우리가 집착하는 모든 소유가 사실은 변화 앞에 속수무책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오늘 도시정비시장을 둘러싼 수주 경쟁과 ESG 내부통제 구축이라는 두 개의 움직임을 나란히 보자면, 흥미로운 발상의 전환이 감지된다. ‘쌓는 행위’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쌓은 뒤에 어떻게 덜 위험하고 더 오래 유지할 것인가로 질문이 옮겨간 것이다. 현대건설이 ESG 데이터를 엄격하게 다스리겠다고 한 것은, 결국 7조 원짜리 성과를 한철 뉴스로 흘려보내지 않고 제도로 붙들어매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터다. 이것은 단순히 건설사 하나의 전략이 아니라, 더 이상 단기 승부로 살아남을 수 없다고 느끼는 우리 시대의 작은 각성일지도 모른다.
萬物作焉而不辭, 生而不有, 爲而不恃, 功成而弗居.
만물을 지어도 말하지 않고, 낳아도 소유하지 않으며, 행하고도 자랑하지 않고, 공을 이루고도 그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 「노자 도덕경」 2장
이 구절은 전쟁터가 아니라 온전히 일상의 장면을 그린 말이다. 노자는 천지자연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설명하면서, ‘위대한 결과를 만들고도 애써 자신의 소유라 주장하지 않는 태도’를 그려 보인다. 꽃이 피어도 “내가 피웠다”고 외치지 않고, 비가 내려도 “내가 적셨다”고 명함을 내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가장 큰 공은 그것을 의식하지 않을 때 비로소 오래 보존된다는 가르침이다.
여기서 말하는 ‘공을 이루고도 머물지 않는다(功成而弗居)’는 태도는, 결코 성과를 아무렇게나 버리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공을 세운 뒤에 더 신중해지고, 그 결과를 자기 과시의 도구로 삼지 말라고 조언하는 셈이다. 직장인이라면 다들 느꼈을 법한 일이다. 어떤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뒤 공로를 혼자 가져가겠다고 설치는 사람일수록 동료들의 마음을 등 돌리게 만들고, 조용히 다음 단계를 고민하는 사람이 오래도록 평가받는 법이다. 건설사가 아파트 한 동을 올리고도 곧바로 다음 사업을 외치기만 하지 않고, 스스로 ESG 내부통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결국 ‘功成而弗居’의 현대적 변주라고 나는 본다. 수주 실적을 올렸으니 이제 그 성공에 기대어 자랑하는 대신, 그 성과가 어떤 원칙 위에 서 있는지 증명하는 문서를 만드는 일. 그것이야말로 있음의 자리를 너무 당당하게 차지하지 않으려는 지혜다.
노자가 말하는 자연의 이치는 어쩌면 너무 이상적으로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 출근길 지하철에서 본 광고판 하나만 떠올려 봐도 금세 이해가 된다. 착한 건설, 신뢰받는 공간 같은 카피가 넘쳐나는 이유는, 소비자들이 이미 ‘잘 지었으면 거기서 멈추지 말고 책임도 길게 가져가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현대건설이 발간한 보고서에는 전 과정 내부통제 프로세스라는 말이 강조되어 있었는데, 이는 바로 ‘우리가 7조를 번 과정을 언제라도 다시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들어 두었다’는 뜻과 다름없다. 자신의 성공을 증명하기 위해 오히려 자신을 투명한 검증대 위에 올려놓는 아이러니, 그로 인해 더 단단해지는 기업의 뼈대. 이것이 바로 천 년이 지나도 닳지 않은 노자의 언어를 2026년 서울 한복판에서 다시 만나는 순간이다.
보고서 한 권이 모래성이 무너지지 않게 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르겠다. ESG 보고서마저 결국 돈을 벌기 위한 도구 아니냐고.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지속가능경영을 외치면서도 실속 없는 이미지 세탁에 그치는 기업을 우리는 너무 많이 봐 왔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 기사에서 읽은 현대건설의 시도는 조금 달라 보였다. 단순히 ‘친환경’이라는 예쁜 단어를 박아 둔 홍보물이 아니라, 글로벌 공시 기준에 맞춰 데이터를 내부에서 통제하는 시스템 자체를 만들었다는 점이 그렇다. 이것은 건물로 치면 기초 공사에 해당한다. 외장재를 바꾸는 리모델링이 아니라, 땅 밑 깊이 말뚝을 박는 일부터 다시 시작했다는 뜻이다.
오래전 어느 스승님께 들은 말이 있다. “가르침이 정말로 사람 안에 들어오면, 그는 설명하지 않아도 행동이 달라진다.” ESG 데이터 내부통제란 결국 그런 것이다. 지속가능성을 경영의 공식 언어로 삼겠다는 선언이고, 그래야 7조 원의 실적이라는 높은 탑이 이익 앞에서 무너지지 않는다는 자각의 산물이다. 우리 삶도 비슷하지 않을까. 저마다 조금씩 이룬 것들이 있다면, 그걸 자랑하기보다 먼저 들여다볼 잣대를 마련하는 일이 우리를 더 오래 가게 할 터다. 건설사가 짓는 건 콘크리트 구조물이지만, 우리가 짓는 건 서로의 신뢰라는 점에서 그렇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제 저녁 무렵이면 목동 7단지 수주전에 열띤 관심이 쏠리겠지. 누가 될지 모르지만, 한 가지 바람은 있다. 7조 원의 성을 쌓되, 그 성을 지키는 방식 또한 아름다웠으면 하는 마음. 그것이 내부통제와 투명한 보고서로 드러나는 훌륭한 지혜라면 더욱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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