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AI 트렌드] 클로드, 금지와 선호 사이의 역설 — 동양철학이 보는 인간의 끝없는 요구와 집착

2026년 7월 4일, 클로드를 향한 갈라진 마음들
오늘 인공지능 업계의 화제는 단연 ‘클로드(Claude)’다. 마치 한 인물을 두고 극과 극의 평가가 쏟아지듯, 전 세계 곳곳에서 클로드를 대하는 태도가 기묘하게 엇갈리는 모양새다.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는 클로드의 코드 편집 도구에 백도어 의혹을 제기하며 전면 사용 금지령을 내렸다. 반면 같은 날 미국에서는 메타의 직원 일부가 여전히 소프트웨어 개발에 경쟁사의 모델인 클로드를 선호한다는 파이낸셜타임스의 보도가 나왔다. 국내로 눈을 돌리면, KB증권이 클로드와의 연결을 적극적으로 열어준 반면,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와 JP모건은 접근을 제한했다는 상반된 소식이 전해진다. 심지어 행정안전부의 공식 자료 이미지를 생성하는 데 클로드가 사용되기도 했다니, 이 도구는 지금 보안 위협이자 필수 생산성 도구이며, 공공의 기록 수단이라는 모순적인 지위를 동시에 부여받고 있는 셈이다. 한 가지 현상에 대한 반응이 이렇게나 제각각일 때면, 나는 늘 그것이 기술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기술을 바라보는 인간의 마음이 투영된 결과는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금지와 집착은 사실 동전의 양면일까
이렇게 단 며칠 사이 벌어진 상반된 뉴스들을 죽 훑으며 강의실에서 자주 마주치는 한 가지 풍경이 떠올랐다. 어떤 학생은 스마트폰을 끊겠다며 다이어트하듯 앱을 삭제하고, 다른 학생은 방금 나온 신형 폰을 손에 쥐고서 더 빠르고 효율적인 길만 찾는다. 알리바바의 금지 조치와 메타 직원들의 지속적인 선호, KB증권의 개방과 JP모건의 제한. 이 장면들은 결국 하나의 동일한 심리적 뿌리에서 나온 두 가지 다른 가지처럼 느껴진다. 바로 ‘내게 이롭게 통제하고 싶은 욕망’이다. 알리바바는 보안을 위해, KB증권은 업무 혁신을 위해, 메타의 개발자들은 더 나은 결과물을 위해 각자 ‘클로드’라는 대상을 자신의 프레임 안에 가두려 한다. 마음에 드는 유익함은 취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은 배제하고자 하는 이 움직임은 무척 인간적이다. 동양 철학의 눈으로 보자면 이는 기술의 문제를 넘어 인간의 끝없는 인정욕구(물론 기능에 대한), 그리고 세상을 내 뜻대로 재단하려는 집착의 문제에 가깝다. 우리는 ‘좋은 AI’와 ‘나쁜 AI’를 가르는 순간조차도, 내 판단의 칼날이 완벽하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諸行無常’ — 변화만이 늘 항상하다는 가르침
諸行無常 — 「法句經」
제행무상
“모든 현상은 항상하지 않다.”
무상한 기술 앞에 서는 지혜, 길은 붙들지 않음에 있다
이 구절은 부처님의 아주 오래된 말씀이다. 불교에서는 우주 만물의 모든 형성된 것, 만들어진 것, 마음의 작용까지를 통틀어 ‘行(행)’이라 부른다. 이 모든 것은 한순간도 머물지 않고 변하며 흘러가니 영원히 붙잡을 수 있는 실체가 없다는 것이 ‘제행무상’의 핵심이다. 오늘날 빠르게 업데이트되고 규제와 해제를 반복하는 AI 기술의 생태계야말로 이 무상의 이치를 피부로 느끼게 해주는 좋은 비유다. 어제까지 세계 최고의 보안 수준을 자랑하던 모델이 오늘은 백도어 의혹으로 금지되고, 엊그제 수출 규제에 묶였던 최신 버전이 바로 다음 날 전 세계에 풀려 자동화율 16%를 기록한다. 우리는 이 흐름을 보면서 마치 실체가 있는 어떤 ‘좋은 AI’가 영원히 존재할 것처럼 욕심을 부리거나, 반대로 ‘위험한 AI’를 완전히 차단하여 영원한 안전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착각에 빠질 때가 많다.
이 가르침을 오늘의 소식에 비추어보면 더욱 명료해진다. 알리바바의 클로드 금지 조치조차도 영원한 답이 될 수 없으며, 메타 직원들의 현재의 선호도 머지않아 바뀔 수 있다. 마치 스마트폰을 바꿀 때마다 느끼는 잠깐의 설렘과 그 반대편에 자리한 피로감처럼, 특정 기술을 붙들고 대상을 절대시하는 마음 자체가 사실은 우리를 더 큰 불안으로 내모는 근원이다. KB증권의 적극적인 도입을 무턱대고 ‘틀렸다’ 말하거나 골드만삭스의 신중함을 ‘옳다’ 평가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의 배후에 깔린 ‘이것이 나를 영원히 이롭게 하리라’는 고정 관념을 내려놓는 일이다. 기술의 파도가 칠 때, 파도 자체에 대고 소리치며 멈추라고 하거나 절망하는 대신, 내 호흡을 가다듬으며 파도의 성질을 아는 것이 ‘무상’을 사는 지혜다.
기술을 믿는다는 것의 진짜 의미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클로드 하나를 두고도 이렇게 무수한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이 모든 뉴스는 결국 “나는 무엇을 붙잡아야 안심할 수 있을까?”라는 묵은 질문으로 수렴되는지도 모른다. 대학 강단에서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신념은 결코 방파제를 굳게 다지는 일이 아니라, 바다의 흐름을 이해하고 노를 저을 줄 아는 능력에 가깝다고. 불안한 마음이 자꾸 금지와 허용이라는 이분법의 망치로 세상을 내려칠 때, 한 번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지금 내가 붙잡으려는 이 기술, 아니 내가 내치려는 이 대상은 과연 언제까지 그 모습 그대로일까.
생각해보면 우리가 진정으로 믿어야 할 것은 특정 도구의 완전무결함이 아니라, 변화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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