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앞당긴다'는 말 속에서 발견한, 인간이 잃어버린 속도에 대하여

삼성전자가 용인 반도체 공장 가동을 2029년으로 앞당긴다는 뉴스를 통해, 장자와 노자의 시선으로 '속도를 내려는 인간의 욕망'을 분석합니다. 진정한 성취를 위해 우리가 되찾아야 할 리듬이란 무엇일까요?

2029년, 시계를 재조정하는 거대한 움직임

오늘 아침 뉴스는 하나의 숫자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2029년’. 삼성전자가 경기도 용인에 조성 중인 반도체 공장, 이른바 ‘팹’의 첫 가동 시점을 2029년으로 못 박으면서입니다. 애초 업계 예상보다 무려 2년을 앞당긴 일정입니다. 글로벌 AI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국가산업단지 조기 조성 기조에 발맞춰 ‘속도’를 높이겠다는 전략이 읽힙니다. 전력과 용수 같은 핵심 인프라 구축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습니다. 기사들은 하나같이 ‘선제 대응’, ‘조기 가동’이라는 말로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가속 페달을 밟는 모양새를 전하고 있습니다.

‘앞당긴다’. 이 짧은 동사에는 묘한 긴장감이 서려 있습니다. 인간이 시간을 통제하고, 지연을 정복했다는 일종의 선언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바라보면서 문득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교수님, 우리는 왜 모든 일에 이렇게 목을 매고 속도를 내야 하는 걸까요?” 취업을 준비하는 한 학생의 질문은, 단순한 개인의 초조함을 넘어 오늘날 시대정신의 한 단면을 건드리는 듯했습니다. 과연 우리가 무언가를 ‘앞당기는’ 행위는 순수하게 합리적인 선택의 결과일 뿐일까요?

‘앞당김’의 심리학, 채우려 할수록 비어가는 그릇

인간에게는 시간을 단축하고, 미래의 무엇인가를 앞당겨 손에 넣으려는 강력한 본능이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삼성이나 국가적 차원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더 빠른 배송을 원하고, 더 짧은 영상을 소비하며, 심지어 연애도 ‘스킵’하고 싶어 합니다. 이러한 태도 이면에는 현재의 나는 부족하며, 미래의 어느 시점에 도달해야만 비로소 충만해질 것이라는 심리가 깔려 있습니다. 즉, ‘결핍’을 전제로 한 욕망입니다.

도가 철학, 특히 장자는 이런 인간의 마음에 대해 매우 날카로운 분석을 내놓습니다. 그가 보기에, ‘앞당기려는’ 충동은 자연의 박자를 거스르는 인위적인 조작에 가깝습니다. 이익을 앞당겨 챙기려 할수록 마음은 더 조급해지고, 목표를 조기 달성하려 할수록 과정의 생태계는 손상됩니다. AI 반도체라는 미래의 거대한 가치를 향해 속도를 높이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술의 발전 속도는 놀랍지만, 혹여 그 과정에서 우리가 지금 딛고 있는 기반들, 이를테면 지역 균형 발전이나 환경과의 조화, 그리고 일하는 사람들의 지속 가능한 삶의 리듬까지 성급하게 생략해버리지는 않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장자는 『장자』 외편 「천지(天地)」 편에서 이를 ‘기계를 사용하는 자는 반드시 기계적인 마음을 갖게 되고, 기계적인 마음은 순수한 정신을 온전히 보존하지 못한다(有機械者必有機事 有機事者必有機心)’고 경고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계적 마음(機心)’이란 효율과 속도만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 모든 것을 수단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마치 무언가를 더 빨리, 더 많이 쌓아야만 마음이 놓이는 자본의 논리가 속도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정신을 점령한 것은 아닌지 모를 일입니다.

“가득 찼다는 이유로 함부로 따르면 안 된다”

이런 장자의 정신과 궤를 같이하는, 오늘의 ‘앞당김’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고전의 구절이 있습니다.

國之利器 不可以示人 — 「道德經 36장」

국지리기 불가이시인

“나라의 날카로운 이기(利器)는 남에게 함부로 보여서는 안 된다.”

이 구절을 표면적으로 읽으면, 국가의 중요한 병기나 전략은 외부에 과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권모술수의 가르침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노자가 이 말을 한 진짜 맥락은 훨씬 더 근본적인 데 있습니다. 이 문장은 본래 “장차 오므리려면 반드시 한 번 펼칠 줄 알아야 한다(將欲歙之 必固張之)”라는 유명한 구절 뒤에 이어집니다. 노자는 세상의 모든 움직임은 인위적으로 속도를 더하거나 힘으로 밀어붙인다고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되돌아옴의 원리 위에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利器’란 단순히 칼이나 기술이 아닙니다.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최첨단 반도체 기술과 같은 ‘강력한 힘’을 상징합니다. 노자는 그런 힘일수록 더 성급하게 자랑하거나 무리하게 속도를 붙여서는 안 된다고 조언합니다.

속도라는 이기, 그 힘을 다루는 지혜

‘시인(示人)’, 즉 남에게 보인다는 것은 단순한 과시를 넘어, 조급하게 외부로 표출하는 모든 행위를 말합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가동 시기를 2년 앞당기는 일은 엄청난 ‘이기(利器)’를 세상에 내보이는 일입니다. 그런데 노자의 관점에서 진정 두려운 것은, 그 강력한 힘 자체가 아니라 그 힘을 통제하고 운용하는 주체가 ‘기계의 마음’에 사로잡혀 느긋함과 여유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인생의 과제나 직장의 프로젝트에서도 비슷한 오류를 저지릅니다. 좋은 기회, 강력한 스펙, 뛰어난 아이디어라는 ‘이기’가 생기면, 하루라도 빨리 그것을 구현하고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입니다. 그래서 인내심을 가지고 여건이 무르익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때로는 공정의 안정성을 위협하면서까지 무리하게 일정을 ‘앞당기려’ 듭니다. 반도체 팹을 짓는 것과 한 사람이 자기의 역량을 키워가는 일은 그 깊이와 무게가 다르지만, 그 내면을 움직이는 심리는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노자는 힘이 강력할수록 오히려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을 더 신중하게 설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진정으로 성숙한 태도란, 첨단의 ‘이기’를 가졌을 때조차도 조바심을 버리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인위적인 속도에 경도되지 않은 채 전체의 조화를 살피는 것입니다. 그것은 늦추는 것이 아니라, 때를 아는 진정한 ‘앞당김’의 지혜라고 할 수 있겠지요.

기사를 찬찬히 다시 읽어봅니다. 삼성전자는 분명 치열한 글로벌 패권 경쟁 속에서 생존과 번영을 위해 현명한 선택을 하고 있을 겁니다. 기민함은 미덕입니다. 다만 부디 그 속도가 세상을 조금 더 여유롭고 따뜻하고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이끌어주기를, 노자와 장자가 꿈꾸었던 그 느슨한 완전함을 기술의 품 안에도 깃들게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아마 지나친 낭만일까요.

빠름에 물들지 않은 느림의 가치, 앞당겨진 시간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한 번쯤 곱씹어 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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