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을 넘어 ‘지속 가능한 술’이란 무엇인가

하이트진로의 '2026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노자와 주역의 시선으로 읽다. 술 회사가 던진 100년 기업의 꿈은 욕망과 성찰 사이의 역설을 어떻게 품고 있는가.

오늘 아침 신문, 술 회사가 던진 묵직한 질문

2026년 7월 10일 오늘, 하이트진로의 소식이 뉴스와 검색어를 채웠습니다. 새로운 술을 출시했다거나, 해외 시장에서 대박이 났다는 흥분되는 얘기가 아닙니다. 바로 ‘2026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표 소식입니다. 장인섭 대표는 “주류 제조를 넘어, 환경과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지속가능한 100년 기업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기후변화 대응, 안전보건, 상생경영을 포함한 7대 핵심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성과와 전략을 담았다고 합니다.

기사 댓글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술 회사가 ESG라니, 팔아먹을 술이나 제대로 만들어라” 하는 차가운 시선도 있었고, “이제 이런 프레임이 기업의 필수 경쟁력이구나”라는 담담한 수긍도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이 제겐 조금 낯설게 다가왔습니다. 술이라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과 즐거움에 기대어 한 세기를 버텨온 기업이 던진 화두가 어쩌면 우리가 매일 맞닥뜨리는 어떤 불안감을 정면으로 건드리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곧 ‘무엇이 진짜 오래 가는가’, ‘어떻게 해야 나은 세계에서 계속 살아남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 말입니다.

욕망을 팔면서 욕망을 다스리려는 역설

우리가 오늘 ‘지속가능경영’이라는 말에서 마음이 끌리는 지점은 사실 환경이나 기술 그 자체가 아닙니다. 그 말 속에는 ‘덧없지 않은 것’, ‘언젠가 닥칠 끝을 조금이라도 늦추려는 몸부림’이라는 감각이 깔려 있습니다. 일종의 불안이죠. “100년을 넘어서겠다”는 하이트진로의 비전도 알고 보면 같은 맥락입니다. 아주 오래된 위기의식의 표현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동양 사상, 그중에서도 노자(老子)로 대표되는 도가(道家)의 지혜는 이런 지점에서 흥미로운 시사점을 줍니다. 노자는 욕망 그 자체를 악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떤 욕망을 채우려 할 때, 무리하게 힘을 주어 대상을 비틀려고 들거나 집착하는 태도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하이트진로가 지금 ‘술’이라는, 자칫 과하면 개인과 사회 모두를 무너뜨릴 수 있는 고리를 통해, 오히려 사회적 건강과 환경이라는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역설적이면서도 의미심장합니다. 자신을 있게 한 욕망의 본질을 인정하면서도, 그 바깥에서 기업의 시간을 지탱할 더 큰 질서를 찾겠다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강한 술을 정갈한 물로 거르듯, 기업의 이기심을 사회적 책임이라는 그릇에 여러 번 거르는 형국입니다.

“저녁의 반성” 속에 숨은 두 글자를 배우다

오늘의 뉴스를 읽으며 제게 유독 오래 남은 말은 ‘이중 중대성 평가(Double Materiality Assessment)’라는 용어였습니다. 어렵게 들리지만, 요점은 간단합니다. 기업이 환경과 사회에 끼치는 영향만 보는 게 아니라, 환경과 사회의 변화가 기업의 생존 자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까지 함께 들여다보겠다는 거죠. 한쪽으로만 흐르던 시선을 접고, 나의 바깥과 안을 하나의 거울로 삼아 서로 비추겠다는 겁니다. 이 지점에서 옛 선비들이 공부하는 마음가짐을 설명한 주역(周易)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君子終日乾乾, 夕惕若, 厲无咎 — 「周易·乾卦 文言傳」
군자종일건건, 석척약, 여무구

군자가 하루 종일 부지런히 힘쓰고(乾乾), 저녁이 되면 마치 위험이 닥친 듯 두려워하고 반성하면(惕若), 설령 위태로운 상황(厲)에 처하더라도 허물이 없다(无咎)는 말입니다.

저녁마다 보고서를 쓰는 이유

이 구절이 담긴 주역 ‘건(乾)괘’ 문언전의 맥락은 이렇습니다. 하늘을 상징하는 군자의 삶이 아무리 창대하더라도, 3효와 4효 자리, 곧 자리가 사람 속에 있을 때는 한 시도 긴장을 놓아선 안 된다는 경계입니다. ‘건건(乾乾)’은 시간의 흐름에 맞춰 쉼 없이 자기를 갈고닦는 모습을, ‘석척(夕惕)’은 단순히 무서워한다는 뜻이 아니라 하루 일이 끝난 저녁에 자신을 객관적인 눈으로 돌아보는 고요한 두려움을 뜻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저녁(夕)’이라는 시간의 무게입니다. 우리는 대개 성과를 만드는 ‘낮’의 활동만을 위대하게 여깁니다. 매출을 올리고 신제품을 내놓는 일이죠. 하지만 주역은 말합니다. 진짜 지속 가능한 힘은 저녁의 반성에서 나온다고. 하이트진로가 2026년의 어느 저녁, 올 한 해 동안 회사가 배출한 탄소를 세고, 협력사와의 거래를 회계 감사하듯 들여다보며 보고서 한 페이지를 채웠을 것입니다. 그 모습이 바로 ‘석척(夕惕)’입니다. “우리가 벌어들인 이익의 바깥에서, 우리가 무심코 훼손한 것은 없는가”라고 두려워하는 태도 말입니다.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이 이야기를 할 때면 종종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교수님, 기업이 돈 벌려고 하는 좋은 일을 그렇게 거창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나요?”라고요. 저는 이렇게 답하곤 합니다. 목적이 어쨌든, 그 행위가 만들어내는 ‘리듬’을 보라고. 매년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에 결실을 맺는 농부처럼, 기업이 일 년을 주기로 자기의 낮과 밤을 구분해 반성하는 리듬을 몸에 익히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단순한 마케팅을 넘어선 변화의 시작이라고. 과거에는 ‘좋은 술, 많이 팔린 술’이 유일한 자랑이었겠지만, 이제 그들은 저녁마다 성찰하는 긴장을 통해 ‘厲无咎(여무구)’의 경지, 곧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힘을 기르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요.

오늘 하이트진로의 보고서는 ‘100년’을 말했지만, 사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보다 훨씬 더 긴 호흡의 상상력입니다. ESG 경영의 진짜 목표가 단순히 회사의 수명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숨 쉬고 마실 공기와 물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녁 반성을 담은 보고서 한 권은, 오래된 기업이 자라서 긴 그림자를 세상에 드리우는 원숙한 그루터기가 되는 첫걸음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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