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챗GPT를 들인 까닭, 노자가 말한 ‘그릇의 쓸모’

삼성전자의 챗GPT 전면 도입 소식을 노자 도덕경의 ‘그릇의 쓸모’로 읽는다. 기술이 채워주는 효율 뒤에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생각의 빈 공간이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보는 글.

삼성전자, 전 세계 임직원에게 챗GPT를 연다

오늘(2026년 6월 22일) 경제면을 장식한 소식 하나. 삼성전자가 오픈AI의 ‘챗GPT 엔터프라이즈’와 코딩 도구 ‘코덱스’를 국내외 임직원 전면에 도입하기로 했다. 국내 모든 임직원과 디바이스경험(DX) 부문 전 세계 직원이 대상이다. 오픈AI 측은 이번 계약을 두고 “전 세계 기업 대상 AI 계약 중 최대 수준”이라고 밝혔다. 생성형 AI가 특정 부서의 실험을 넘어, 이제 한 거대 조직의 일상적 업무 도구로 자리 잡는 순간이다.

그런데 이 장면을 바라보며 문득 든 생각이 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더 빠르고 더 정확한 도구를 갈망할까. 그 도구가 우리의 ‘생각하는 일’을 대신하게 되었을 때,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도구를 채우는 일, 그리고 비워지는 것

인간은 유한한 존재다. 시간도, 지식도, 판단력도 다 한계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부족함을 채워줄 도구를 찾았다. 수메르인의 점토판, 주판, 검색 엔진을 거쳐 이제는 스스로 글을 쓰고 코딩까지 하는 AI에 이르렀다. 챗GPT 도입은 결국 ‘더 많은 일을 더 빨리 해내고 싶다’는 욕망의 최신 버전이다. 이는 단순히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유한한 자신을 벗어나고픈 인간의 오래된 불안이기도 하다.

그런데 노자는 여기서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그릇의 가치는 그것이 가득 찬 순간에 있는가, 아니면 비어 있음으로써 무엇인가를 담을 수 있다는 데에 있는가.

“비어 있음으로써 쓰인다”

『도덕경』 11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埏埴以爲器, 當其無, 有器之用.”
(연식이위기 당기무 유기지용)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지만, 그 비어 있음으로 말미암아 그릇으로서의 쓰임이 생긴다.”

노자는 그릇뿐 아니라 수레바퀴와 방도 함께 예로 든다. 바퀴살이 모여 있지만 진짜 쓰임은 그 중심의 빈 공간[無]에서 나오고, 방도 벽과 지붕이 둘러싼 그 빈 공간이 있기에 사람이 살 수 있다고. 우리가 흔히 형태와 채움, 즉 ‘有’에 주목할 때 노자는 그 이면의 비어 있음, 즉 ‘無’를 바라볼 것을 권한다.

삼성전자가 챗GPT를 도입하는 것은 ‘그릇을 더 크고 정교하게 만드는 일’과 같다. 더 많은 데이터와 더 빠른 답변으로 가득한 그릇. 하지만 그 그릇이 진정으로 유용하려면, 그것을 쓰는 인간에게 ‘비어 있음’의 공간이 남아 있어야 한다. AI가 대신 요약해준 시간에,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 코덱스가 코드를 짜주는 사이, 우리는 어떤 설계의 빈틈을 바라볼 것인가.

생각의 빈 공간이 사라질 때

노자의 가르침을 오늘의 이 도입 소식에 비추어 보면, 우려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에 있다. 그릇을 가득 채우기에 급급해 그 비어 있음의 가치를 잊는 것. AI가 모든 답을 미리 제시해줄 때, 인간 특유의 머뭇거림과 의심, 그리고 그 공백 속에서 피어나는 창의가 설 자리를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이 기술이 주는 혜택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강의실을 떠올리면, 학생들이 가장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질 때는 정답이 없는 침묵의 순간이었다. 그 짧은 멈춤, ‘無’의 시간에 뭔가가 찾아오곤 했다. AI로 가득 채워진 업무 환경에서도 그 잠깐의 빈 곳을 의도적으로 남겨둘 수 있을지, 어쩌면 그게 이 거대한 전환의 진짜 과제가 아닐까.

생각할 자리가 있는 그릇. 우리가 정말 빚어야 하는 것은 그런 그릇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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