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진산전의 420km 전기버스, 낮은 바닥에 깃든 오래된 지혜

1,000억 원이 실은 하나의 턱을 없애는 일

오늘(2026년 6월 25일) 아침, 우진산전이 총 101억 원 규모의 국책 과제에 착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산업통상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함께하는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단순하다. 1회 충전으로 420km를 달리는 전기버스를 만들고, 바닥을 낮춰 휠체어 탄 이도 편안히 오르내리게 하며, 그 핵심 부품을 중국산이 아닌 우리 기술로 채우는 일. 한편 오송시험선에서는 30년 넘게 달린 미국 LA 메트로 전동차의 전장품과 내장재를 고치는 우진산전의 또 다른 손길이 바쁘다.

그런데 이 기사들을 읽으며 문득 시선이 멈춘 곳은 ‘420km’라는 숫자나 ‘3,406억 원’이라는 규모가 아니었다. ‘저상’이라는 두 글자, 즉 차량 바닥의 턱을 낮추어 계단 없이 타게 한다는 대목이었다. 기술이 거대해질수록 우리는 더 높고 빠른 것에 주목하지만, 이 기업은 정작 바닥을 낮추는 데 101억 원을 쓰기로 했다. 이 낯선 역설에서 생각이 출발한다.

노자가 보았을 기술의 겸손

기술의 발전은 대개 위를 향한다. 더 높은 빌딩, 더 빠른 속도, 더 화려한 스펙. 그러나 동양의 지혜는 종종 아래로 향하는 데서 진짜 힘을 찾았다. 「도덕경」에 나오는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의 비유가 그렇다. 노자는 천하보다 부드러운 물이 단단한 바위를 뚫고, 모든 개울이 강해지려 낮은 곳으로 달려간다고 말한다. 우진산전이 지금 집중하는 ‘저상’ 기술은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를 떠올리게 한다. 진짜 좋은 기술은 마치 물처럼 높은 곳에 있으려 하지 않고, 가장 낮고 소외된 이들의 발밑으로 스며든다.

이 지점에서 기술과 윤리의 접점을 발견한다. 교통약자의 이동 편의를 높이겠다는 이번 사업의 표면적 목표 너머에는, 속도 경쟁에서 잠시 멈추어 누군가의 ‘턱’을 없애려는 겸손한 선택이 있다. 필자 생각에, 이것은 시대정신을 읽는 하나의 전환점일지도 모른다. 기술의 진보를 ‘더 멀리, 더 빠르게’라는 수직적 상승으로만 그리던 시대에서, ‘더 낮게, 더 함께’라는 수평적 포용으로 시선을 돌리는 움직임 말이다.

孟子가 말한 ‘인간다운 정부’와 버스 한 대

이러한 방향성은 맹자의 정치철학과도 정확히 맞닿는다. 맹자는 양혜왕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今王發政施仁, 使天下仕者皆欲立於王之朝, 耕者皆欲耕於王之野, 商賈皆欲藏於王之市, 行旅皆欲出於王之塗.

“왕께서 이제 정치를 펴고 인(仁)을 베푸시면, 천하의 벼슬하고자 하는 이들이 왕의 조정에 서고 싶어 하고, 농사짓는 이들이 왕의 들에서 갈고 싶어 하며, 장사치들이 왕의 시장에 물건을 두고 싶어 하고, 나그네들이 왕의 길로 다니고 싶어 할 것입니다.” (「맹자·양혜왕 상」)

여기서 주목할 말은 ‘塗’, 즉 길입니다. 맹자는 좋은 정치의 척도를 결국 다양한 사람들이 ‘다니고 싶어 하는 길’로 그렸다. 왕도정치(王道政治)의 핵심은 거창한 제도가 아니라 노인, 아이, 장애가 있는 이 할 것 없이 누구나 편안히 오갈 수 있는 그 길, 그 수레에 있었다. 오늘날 우진산전이 개발 중인 저상좌석버스는 현대판 왕도(王道)의 축소판이 아닐까.

가장 작은 곳에서 닿는 가장 큰 가르침

여기서 잠시 내가 속한 강단의 풍경을 떠올린다. 얼마 전 수업에서 한 학생이 “교수님, 인(仁)이라는 게 너무 커서 일상에서는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물었다. 나는 웃으며 답했다. “내일 아침, 버스 탈 때 누군가 무거운 짐을 들고 올라오느라 허둥대는 모습을 한 번만 유심히 보면 돼요. 그게 시작입니다.”

맹자가 말한 仁의 출발점은 바로 이런 것이다. 타인의 불편을 상상하는 마음 말이다. 기술자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배터리와 전력모듈의 국산화라는 거대한 기술적 도전은, 결국 무거운 휠체어를 끌고 계단 앞에서 망설였을 누군가의 3분을 떠올리는 일에서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주역」 ‘계사전’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온 천하의 뜻을 한 몸에 받아들이고, 온 천하의 일을 이루어 낸다(通天下之志, 成天下之務).” 우리는 흔히 천하(天下)를 웅장한 제국이나 거대 시장으로 상상하지만, 주역은 그 천하가 결국 지극히 세밀한 곳, 하나의 마음을 통하는 데서 열린다고 가르친다.

420km를 달리는 차세대 전기버스. 그 바닥 높이를 단 몇십 센티미터 낮추는 일이야말로 기계의 온 천하를 사람의 온 마음에 닿게 하는 기술일 것이다.

오늘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번쯤 버스의 계단을 내려다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 작은 턱 하나 없애는 데 101억과 수년의 시간을 들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문득 낯설고도 따뜻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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