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클 2만명 해고와 삼성 UFS 5.0을 보며 중용(中庸)을 떠올리다

숫자로 말하는 ‘AI’, 그 낯선 풍경
2026년 6월 23일, 오늘 아침 경제면은 온통 ‘AI’로 가득했다. 오라클이 1년 새 직원 13%인 2만1000명을 감원했다는 소식이다. 인공지능 도입에 따른 업무 자동화와 AI 인프라 투자 재원 확보가 그 이유라고 한다. 바로 그 시각, 삼성전자는 ‘온디바이스 AI’에 최적화된 UFS 5.0 메모리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는 뉴스와 HBM4 매출이 양산 4개월 만에 10억 달러를 돌파했다는 기사가 동시에 쏟아진다. 기계가 사람의 자리를 대신하고, 더 빠른 기계를 향한 투자는 쉬지 않는다. 익숙한 풍경이지만 문득 낯설게 다가온 것은, 이 모든 움직임이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효율’과 ‘성장’이라는 두 단어로만 설명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편리함이 키운 불안, 그 이면을 묻다
AI는 인간을 단순히 돕는 도구를 넘어, 인간의 자리를 재배치하고 있다. 오라클은 2만1000명을 해고하면서도 AI 인프라에는 공격적으로 투자한다. 이는 ‘무엇을 위해 기술을 발전시키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불러낸다. 동양 사상은 도구 그 자체보다, 도구를 대하는 인간의 마음가짐을 문제 삼아왔다. 장자는 ‘기계가 있으면 반드시 기계적인 마음(機心)이 생긴다’고 했고, 『중용』은 사물과 사람이 제자리를 찾아 조화를 이루는 상태, 곧 ‘중화(中和)’를 강조한다. 오늘날 AI를 둘러싼 풍경에서 나는 이 중화의 정신이 실종되고 있음을 느낀다. 한쪽에서는 사람을 내보내고, 다른 쪽에서는 더 빠른 칩을 생산한다. 능률의 논리만 있고, 균형의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인간에게 효율만이 전부라면, 우리는 과연 더 자유로워지고 있는 것일까.
칼을 쥐는 마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중용』은 이렇게 말한다.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중이라는 것은 천하의 큰 근본이요, 화라는 것은 천하의 통달한 도다). 여기서 중(中)은 단순한 가운데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치우치지 않고 가장 적절한 상태를 가리킨다. 화(和)는 중이 외부로 드러나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이 둘이 갖춰질 때 ‘천지가 제자리에 있고 만물이 길러진다(天地位焉 萬物育焉)’고 말한다. 오늘날 기업들에게 AI는 생존을 위한 칼이다. 중요한 건 칼을 쓰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칼을 쥔 마음이다. 2만1000명의 해고를 단지 ‘비용 절감’으로만 바라보는 마음은 중을 잃은 마음이다. 반면 삼성의 UFS 5.0이 데이터를 중앙 서버가 아닌 기기 스스로 처리하게 하여 속도와 자율성을 높이는 방향은, 어쩌면 모든 것을 거대한 중앙으로 집중시키는 욕망에서 벗어나려는 작은 중의 실천일지도 모른다.
당신의 일상에서 중용은 어디에 있는가
중용은 추상적인 철학이 아니다. 내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이렇게 묻곤 한다. “스마트폰을 바꿀 때, 필요한 기능 때문에 바꾸는가, 아니면 불안해서 바꾸는가.”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종종 필요 이상의 속도와 성능을 좇는다. AI가 제안하는 최적의 일정, 자동화된 업무 시스템이 늘어날수록 우리는 편리해지는 만큼, 결과에 대한 책임마저 기계에 넘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중용의 정신을 일상에 적용해 보자. 더 나은 기술을 외면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세우라는 뜻이다. 오라클이 13% 인력을 줄이는 결정을 할 때, 과연 그 판단이 조직의 본질적 가치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스스로 물었을까. 우리 역시 AI 도구를 받아들일 때, 그것이 진정 나를 더 인간답게 만드는 길인지 한 번쯤 멈춰 생각해볼 일이다.
말미에 다시 『중용』 한 구절을 떠올린다.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중화를 지극히 하면 천지가 제자리를 잡고 만물이 길러진다). 해고의 칼바람 속에서도, 더 빠른 반도체의 환호 속에서도 인간다운 균형을 찾는 일.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기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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