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의식이 있는가? ‘사람이 도를 넓힌다’는 옛말의 답

오늘 아침, ‘AI는’이라는 빈칸
오늘(2026년 8월 22일) 아침 뉴스마다 ‘AI는’ 뒤에 다른 말이 붙는다. 한쪽에서는 “AI는 의식이 있는가”라고 묻고, 다른 쪽에서는 “AI는 정보를 제공할 수는 있지만 사랑을 대신할 수는 없다”고 단언한다. 부산에서는 해운·스마트 물류·피지컬 AI 인재를 기르는 대학 사업이 소개되고, 금융 쪽에서는 AI 에이전트 간 결제까지 내다본 스테이블코인 논의가 나온다. 19년 만에 치솟았다는 미국 장기금리 기사에서도 AI 투자와 대형 기술기업 회사채가 거론된다. AI는 이미 기술을 넘어 경제와 노동, 관계의 문법을 바꾸는 빈칸이 된 셈이다.
그런데 이 많은 문장을 읽다 보면 이상하게 한 가지가 걸린다. 우리는 ‘AI는’이라는 주어 뒤에 점점 더 많은 서술어를 붙이는데, 정작 그 문장의 주인인 ‘사람은’ 뒤에는 무엇을 붙여야 하는지를 덜 묻고 있지는 않은가.
정보를 채우는 기계, 의미를 일으키는 사람
오늘 기사 중 “인간 본성을 데이터로 바꾸는 기술의 위험”이라는 표현이 눈에 남는다. AI는 인간의 선택, 감정, 관계를 패턴으로 바꾸어 예측한다. 예측이 정확해질수록 편리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잴 수 없는 것’이 점점 사라지는 느낌이 든다. 알고리즘은 취향을 분석할 수 있지만 상처를 이해하고 품어주지는 못한다는 칼럼의 문장도 같은 지점을 건드린다.
동양 인문학의 오래된 질문에는 ‘인간다움’이 정확한 계산보다 어디에 있는가 하는 물음이 있다. 공자는 사람다움의 핵심을 ‘仁(인)’이라고 했는데, 이는 단순한 친절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따뜻한 책임, 상대의 고통에 반응하는 마음이다. 정보는 나를 분석할 수 있지만, 내가 아플 때 곁을 지켜주는 일은 분석이 아니라 응답이다. AI가 아무리 많은 데이터를 배워도 그 응답의 자리는 결국 사람이 채워야 한다.
“사람이 도를 넓히는 것이지,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니다”
人能弘道,非道弘人。 — 「論語·衛靈公」
인능홍도, 비도홍인
“사람이 도를 넓히는 것이지,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니다.”
내비게이션은 길을 말하지만 목적지는 말하지 않는다
이 말은 공자가 제자들에게 한 짧은 선언이다. 여기서 ‘道(도)’는 종교적 진리나 거대한 관념이 아니라, 사람이 세상 속에서 만들어 가는 바람직한 길, 곧 삶과 공동체의 방향이다. ‘弘(홍)’은 ‘넓힐 홍’ 자로, 그 길을 더 넓고 깊게 하는 일이다. 공자는 그 일의 주체를 분명히 ‘사람’에 둔다. 아무리 좋은 가르침, 제도, 기술이라도 그것이 사람을 저절로 성장시키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이를 오늘의 AI에 옮겨 보면 명료해진다. AI는 내비게이션처럼 더 빠른 길, 더 많이 소비되는 콘텐츠, 더 효율적인 운송 경로를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왜 그 길로 가야 하는지, 어떤 항구를 만들어야 하는지, 어떤 관계가 나에게 좋은 관계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부산이 피지컬 AI로 해양수도를 만들고자 할 때, 항만 자동화 기술 자체가 부산을 좋은 도시로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그 기술로 어떤 일자리를 만들고 어떤 삶을 지킬 것인가를 정하는 것은 사람의 몫이다.
강의실에서 학생들이 챗봇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물었다는 이야기를 가끔 듣는다. 나는 그 질문이 오히려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답을 기계가 주는 순간, 그 질문은 더 이상 학생 자신의 질문이 아니게 된다. 사람이 도를 넓히는 것이지, 도구가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빈칸 앞에서 되묻기
오늘 우리가 ‘AI는’ 다음에 어떤 말을 채우든, 그 문장의 끝에는 언제나 ‘사람은 무엇을 넓히고 싶은가’라는 질문이 따라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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