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공단 새 수장, 흉부외과 의사에게 맡긴 까닭
2026년 7월 17일,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인사
오늘 아침 신문과 뉴스 알림에는 한 인물의 이름이 유난히 많이 등장했습니다. 주인공은 강청희 전 한국공공조직은행장입니다. 보건복지부는 7월 17일 자로 그를 제11대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에 임명했고, 임기는 오는 7월 20일부터 2029년 7월 19일까지 딱 3년입니다. 연세대 의대 출신에 흉부외과 전문의라는 이력을 지닌 신임 이사장은, 그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걸어온 길과는 조금 다른 결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같은 날, 감사원의 하반기 감사 계획에도 공단의 이름이 나란히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거대한 조직이 맞이한 변곡점 앞에서, 우리는 이 장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몇 년째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동양 인문학을 읽으며, 저는 겉으로 보이는 제도의 변화보다 그 이면에 놓인 ‘몸을 바라보는 태도’가 궁금해졌습니다.
오장육부의 자리마다 다른 불이 있다
소식이 주는 첫인상은 분명합니다. 흉부외과 의사 출신을 수장으로 세웠다는 것은, ‘행정’보다 ‘현장의 몸’에 방점을 찍은 결정으로 읽힙니다. 건강보험은 우리 몸에 깃든 질병과 노쇠, 예측할 수 없는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다 함께 돈을 모으고 위험을 나누는 오래된 약속입니다. 그런데 ‘모두의 약속’이라는 이름 아래 운영되는 이 거대한 기금은, 때로 숫자와 재정 건전성에만 매몰되면 정작 약속의 당사자인 개별 환자의 체온을 놓치기 쉽습니다.
흉부외과 의사는 어떤 사람입니까. 심장과 폐, 생사의 경계에서 손을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타인의 몸속 깊은 곳을 직접 보고 만지며, 수술실 밖에서는 결코 알 수 없는 생명의 취약함과 직면합니다. 강 이사장의 이력을 보자면, 그는 행정 책상 앞에서 ‘효율’을 논하기 전에 이미 수술대 위에서 ‘생명’을 논해온 사람입니다. 공공조직은행장으로서 장기 기증과 이식을 관리해온 경험은, 제도를 운영하되 결코 냉정함에 빠지지 않고 인간의 유한함을 기억하라는 암묵적인 요구처럼 느껴집니다.
여기서 잠시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흔히 어떤 제도가 ‘오래 지속되길’ 바랄 때, 흔들리지 않는 철옹성 같은 구조를 상상하곤 합니다. 하지만 동양의 지혜 안에서 ‘지속’은 변화를 받아들이는 능력에서 비롯된다고 가르칩니다. 마치 우리 몸이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피를 돌리며 낡은 세포와 새 세포를 교체하면서 스스로를 유지하듯, 건강보험 시스템 역시 47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수한 개혁의 생체 리듬을 겪어왔습니다. 이번 인사는 그 리듬의 한 박자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어쩌면 우리 사회가 ‘아픈 몸’을 어떤 눈으로 돌봐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상징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자는 왜 불씨 이야기를 꺼냈을까
장자는 ‘양생주(養生主)’ 편에서, 육체의 고통과 생명의 지속에 관해 아주 짧고 의미심장한 비유를 남깁니다. 그는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기름’이나 ‘장작’에 주목하지 않고, 더 깊은 곳에 있는 불씨를 보라고 조언합니다.
指窮於爲薪, 火傳也, 不知其盡也.
지궁어위신, 화전야, 부지기진야
이 말은 “기름이나 장작은 마침내 다 타서 사라지지만, 불은 다음 장작으로 옮겨 붙어 그 다함을 알 수 없게 전해진다”는 뜻입니다. 생명을 유지하는 물리적 연료가 아니라, 그것에 깃들어 꺼지지 않고 이어지는 밝음에 시선을 두라는 가르침이지요.
장작만 바라보는 세상에 균열을 내는 법
장자가 활동하던 전국시대는 인간의 육체가 전쟁과 질병, 빈곤에 얼마나 쉽게 스러지는지를 뼈저리게 보여주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장자는 ‘불이 전해진다’고 말합니다. 제도권 안에서라면 ‘장작’은 병원과 약, 의료비와 보험료에 해당할 겁니다. 당장 눈에 보이고, 예산을 세워 분배해야 하며, 다 타면 새로 보충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반면 ‘불’은 환자의 생명을 살리려는 마음, 그리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서로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연대 의식입니다. 연료만 바라보면 곧바로 고갈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히지만, 불을 보존하는 법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생각보다 넉넉한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신임 강 이사장의 임기 동안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필자 생각엔, 의사 출신 수장은 단순히 거시적 재정 통계만을 쥐고 흔드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치료 행위가 담아내는 ‘불씨’를 발견하고 그것을 정책 언어로 옮기는 역할을 기대받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예컨대, 죽어가는 환자의 장기를 살아 숨 쉬는 누군가에게 연결하는 이식 수술의 과정은 단순한 의료 행위가 아니라, 생명의 불씨를 전수하는 상징적 의례와도 같습니다. 그러한 현장 감각이 거대한 보험 재정의 설계로 이어질 수 있다면, 오늘날 우리 건강보험이 마주한 도전들을 조금 더 체온 가까이에서 풀어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불교 경전은 모든 현상이 조건 따라 생멸한다는 무상의 이치를 설파하고, 맹자는 ‘백성을 가장 큰 가치로 삼는 정치(民爲貴)’를 말했으며, 공자는 군주가 먼저 솔선수범해 배려하면 백성이 저절로 부끄러움을 알고 바르게 나아간다고 하였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거는 사람들의 기대도 이와 근본이 다르지 않습니다. 보험료라는 숫자 뒤에 숨지 말고, 공동체가 아픈 몸 하나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가장 오래된 약속을 지키라는. 그 약속을 증명하는 일에 오늘 흉부외과 의사의 손길이 더해진 셈입니다.
연료가 아닌 불을 지키는 하루
건강보험 재정이 흔들린다는 걱정 섞인 뉴스는 앞으로도 계속될 겁니다. 감사원의 정기 감사를 받는 이유 역시, 모인 돈을 더 잘 지키라는 사회적 압력에 다름 아닙니다. 하지만 그 모든 이야기가 결국 ‘장작’의 영역에서만 맴돌면, 우리는 조금만 삐걱거려도 생존을 위협받는다는 두려움에서 헤어나오기 어렵습니다. 오늘 하루, 국민건강보험공단이라는 이름 앞에서 잠시 멈추어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결국은 꺼지지 않고 전해져 내려오는 불씨라는 사실을.
당신이 지키고 싶은 불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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